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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기계들의 철학과 정치학
우리를 둘러싼 가족주의와 국가주의, 그것은 정말 우리에게 안락한 삶을 안겨주는가? 『안티 오이디푸스』를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것들을 해체하려 시도한다. 그들의 해체는 성공할 수 있을까.
수강료 : 39,000원 (적립5% : 최대1,950 원)
강사 : 최진석
구성 : 총 5강 | 20교시 | 10시간37분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제작년도 : 2015년 | 고화질
 
 
문*일 님
엄*희 님
유*준 님

우리는 국가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을까. 아니면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 안에서 부당한 지배 체제에도 순응하도록 길들여진 존재들일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가족과 국가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이 강의에서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재조명하면서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주체의 욕망의 구조'에 대해 사유한다. 수유너머 대표 최진석 교수와 함께 욕망하는 주체들의 새로운 미래, 다르고 낯선 미래를 상상하는 법을 배워보자.

칸트와 스피노자, 니체를 연구하던 대학교수 질 들뢰즈와 현실개입적 정신분석의 활동가이던 펠릭스 가타리가 의기투합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보다 크다고, 네가 무엇을 원하든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무의식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즐거운 분열


우리는 억압 없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과 국가에 의해 길들여지고 훈육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고백한다. 가족의 품에 안기고 국가의 보호를 누리는 삶처럼 편안한 것은 없을 듯하다. 무의식의 위대한 발견자 프로이트는 가족과 국가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욕망의 대상이라고 가르쳤다. 정말 그럴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무의식은 우리를 담아 가두는 굴레가 아니라 어떤 굴레든 그 너머로 빠져나가는 ‘불온한’ 능력이다. 때문에 가족과 국가라는 환상에 갇혀 있는 한, 우리는 불운한 분열을 맛보며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즐거운 분열, 그것은 무의식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폭발하는 회로를 발견하는 일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J. Peter Siriprakorn at commons.flickr.com

https://flic.kr/p/qdKqg


정신분석의 창안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발견하자마자 꽁꽁 묶어 봉인해 버렸다. 우리의 욕망은 엄마와 아빠에 대한 불길하고 끔찍한 환상 속에 갇혀 버렸고, 사회는 이러한 가족극장으로 가득 채워졌다. ‘복종하라, 가족을 사랑하라!’를 실천하게 하고 ‘엄마-아빠-나’라는 가족의 영토를 운명으로 삼고 애착하는 삶을 강요한다. 그렇게 우리를 영원한 예속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펠릭스 가타리(Guattari Félix, 1930~1992)

ⓒthierry ehrmann at commons.flickr.com

https://flic.kr/p/opPbDU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자혁명


결박된 욕망의 사슬을 폭파하라, 네 자신의 욕망을 해방시켜라! 상품광고처럼 들리는 이런 주문보다 더 큰 헛소리는 없다. 도대체 무엇을 풀어놓고 어떻게 자유를 찾을 것인가?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자혁명은 내키는 대로 맘대로 살아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비-파시스트적 삶을 창안하고 살아가기 위해 좀 더 신중하고 앎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분열분석은 그 길을 찾아가는 지도가 아니라 지도를 그려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라 명명된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안티 오이디푸스』는 가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적 기획이자 정치적 선언이다. 인류의 오랜 환상인 가족과 국가를 타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르고’ ‘낯선’ 미래를 상상하고 구성하는 적극적 비전이기 때문이다. 이 강좌는 그 잠재성과 가능성을 탐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제1강 비-파시스트적인 삶과 자유 중에서
제2강 유물론적 욕망과 기계주의 중에서
제5강 분열분석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안티 오이디푸스』(민음사, 2014)
구플레이어 고화질 일반화질 음성
  • 회 차
  • 제 목
  • 시 간
  • 보 기
1강 비-파시스트적인 삶과 자유 133분
교안다운
1교시 -   들뢰즈와 가타리에 관하여 1 45분 1강 1교시 강의보기
2교시 -   들뢰즈와 가타리에 관하여 2 36분 1강 2교시 강의보기
3교시 -   욕망하는 생산과 사회 1 26분 1강 3교시 강의보기
4교시 -   욕망하는 생산과 사회 2 26분 1강 4교시 강의보기
주요내용 -안티 오이디푸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만남
2강 유물론적 욕망과 기계주의 143분
교안다운
3강 정신분석, 혹은 영원한 가족극장 125분
교안다운
4강 영토기계와 국가의 역사 128분
교안다운
5강 분열분석이란 무엇인가? 108분
교안다운
최진석 (이화여대 연구교수)

수유너머104 회원. 러시아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이화여대 연구교수. 정통을 벗어난 이단의지식, ‘잡종적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잡학다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 공부길에서 수유너머의 친구들이 ()친절한 동반자들임에 늘 감사해 한다. 그렉 램버트의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미하일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를 번역했고, 불온한 인문학등을 함께 썼다.

- 저서
『불온한 인문학』(공저, 휴머니스트, 2011)
『 휘말림의 정치학』(공저, 그린비, 2012)
『국가를 생각하다』(공저, 북맨토, 2015)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그린비,2017)
- 역서
『레닌과 미래의 혁명』(루이 알튀세르 저, 그린비, 2008)
『해체와 파괴』(미하일 리클린 저, 그린비, 2009)
『러시아 문화사 강의』(니콜라스 르제프스키 저, 그림비, 2011)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그렉 램버트 저, 자음과 모음, 2013)
 
  • 번 호
  • 제 목
  • 작성자
우수 즐거운 강의 문*일
즐겁고 재미난 강의입니다.
특히나 강사분이 너무 재치가 있어 중간중간에
웃을 수 있어 듣는 동안에도 귀가 즐거웠습니다.
강의도 알찼는데 최진석 강사님의 다른 강의는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듭니다
다른 최진석 강사님의 철학강의도 생겼으면 합니다
우수 자본이라는 야만 엄*희
오늘은 원시 영토 기계, 야만 전제 군주 기계, 문명 자본주의 기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원시 사회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을까. 우리처럼 화폐 중심적, 자본주의적 교환 체제는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내가 A에게 선물을 했다면 A는 다시 나에게 무엇인가로 답례를 한다. 하지만 원시 시대에는 우리와 달랐다고 한다. 나는 A에게 선물을 하고 A는 B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들은 왜 그런 얼토당토 안한 방식으로 살았던 것일까. 손해만 보는 방식 아닌가. 그렇지 않다. 원시 시대에는 이런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주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빚진 상태를 유지하고 이로써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연대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반대로 오늘날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돈(뿐 아니라 뭐든지 되갚으면)을 갚으면 그만, 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의 관계는 깨끗이 청산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운용되는 공동체는 서로에게 책임도 그에 따른 신뢰도 마음씀도 없는 차가운 공동체가 된다.



세월호부터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타자에게 전혀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라고 본다. 삼성병원은 쉬쉬하느라 바빴고 세월호는 또 어떤가. 이 사건은 너무도 끔찍해 말도 꺼내기 싫다.



원시 시대에는 저런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선물로 보내거나 태워 없앴다. 축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축적을 해서 부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이었을까. 이렇게 본다면 야만에 가까운 것은 문명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보면 더 많이 베풀고 잉여를 남기지 않는 것을 통해 원시 사회는 유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제군주제와 문명 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사회 운용 체제는 깨지고 만다.



전제군주제는 군주라는 절대적 권력(베풀기 보다 축적에서 나온 힘)을 중심으로 유지되었고 자본주의에서는 화폐라는 절대적 권력이 노동력을 갈취하며 잉여를 축적해, 사회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지되는 사회가 정상적일까. 자본주의는 거의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물에서부터 성까지) 돈만 있으면 만사형통인 것 같이 운영되지만 돈이라는 수단을 목적으로 뒤바꿔 버린 도착적인, 아주 이상한 사회일 뿐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이전까지의 모든 사회 기계들과는 구분되는 메커니즘을 가진다. 원시 영토 기계나 전제군주 기계가 생산의 흐름을 가두고 그 낙차를 이용해 힘을 가지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자본주의 기계는 신분도 폐지하고, 노동력은 자유롭게 이동하게 놔두는 방식으로 거의 모든 것들을 해방시켰다. 단 화폐라는 물신만 빼고. 화폐는 추상이다. 실체가 없다. 따라서 그것은 상징계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마치 라캉이 말한 대상a처럼 실재 같은 것인데 화폐는 모든 사물을 내재성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존재론적으로 평면화’ 한다. (어려운 말들이 계속되지만 인내심만이 살길이다 ㅠ)그 자신만 제외하고. 바로 이 자기 비판의 무능력, 불가능성이 자본주의를 그 너머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문제는 책을 읽는 일인데, ,,,,,책을 읽는 일이다.
우수 『안티 오이디푸스』가 말하려는 것 유*준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는 도전해야지, 언젠가, 하는 책 중에 하나다. 생각나면 한번쯤 펼쳐보긴 한다. 그리고 닫는다. 올여름, 이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봐야겠다, 마음먹었다. 혼자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 수유너머 최진석 선생님이 강의를 해주신다기에 책부터 샀다. 거금을 들여, 새번역판!



사놓고 앉아서 책표지를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왜 오이디푸스에 반대하지? 오이디푸스는 뭐지? 그래서 당신이 주장하는 건 뭐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까막눈이라 읽을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 강의는 먼저 시원하게 이 간단한 물음들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한다.



오이디푸스의 가족 신화는 말하자면 엄마, 아빠, 나의 감각형 구조 속에 구성원 각자를 구속하고 주어진 역할로 축소하며 위계화 시킨다. 이들 구성원을 욕망의 흐름, 생산의 흐름으로 움직이기를 허락하지 않고, 특정한 방식으로 ‘분할하고 위계를 할당하여 단일하게 규정된 회로’를 만든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구조에서는 각 항들 사이에 고착화된 위계가 시작되고 反생산의 회로가 반복’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본적으로 이런 회로에 반대한다.



이런 구조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아니 생산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들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이런 회로에 반대하면서 들뢰즈, 가타리는 ‘기계’라는 말을 쓰는데 기계는 새로운 조합, 분해가 가능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인간도 기계이고, 자동차도, 사물도 모두 기계라 할 수 있다. 인간 기계들이 어떻게 기존의 조합을 해체해서 새롭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과제는 자본주의적 분업의 거대 기계를 중단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의 흐름을 꺾는데 있다."



이들이 말하는 ‘기계’는 질료들의 흐름, 힘의 지속적인 이행을 절단하고 이어붙인다. 이 때문에 기계들은 임시변통, 재주꾼이라 부를 수 있다. 잘못된 결합으로 뭔가 잘못 생산될 수도 있지만. 포스트잇,은 잘못 만들어진 물건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고 있는가. 이게 없으면 논문도 못쓴다는..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우리는 사회에서 신분을 유지하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교사로 학생으로, 신입사원으로, 과장으로, 주부로 등등. 하지만 나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기를 넘어서 다른 욕망을 가질 수 있다. 춤추고 노래할 수 있고 다른 친구들과 밤에 만나서 학교 공부 말고 다른 불온한 서적들을 읽을 수도 있다. 이런 흐름들을 차단하는 게 우리 사회이다. 위험해서이건 쓸모없어서이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위험하고 쓸모없다고 하는 건 그들의 이데올로기일지 모른다.



저자들이 ‘기관없는 신체’를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특정한 방식으로 인간을 옴짝달싹 못하게 기관화시켜 순응하는 인간형, 분업화된 인간형, 특정 임무만을 수행하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1 내맘대로 후기 - “전체에 저항하는 부분 (충동)대상” 김*수
첫페이지 입니다    1    끝페이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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